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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下 群山府에서 住民의 移動事情과 階層分化의 양상 ; The Human Migration Patterns and the Aspect of Social Stratification in Kunsan Prefecture under Japanese Imperial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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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معلومة اضافية
    • Contributors:
      김태웅
    • بيانات النشر: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الموضوع:
      2023
    • Collection:
      Seoul National University: S-Space
    • نبذة مختصرة :
      군산부는 1899년 개항을 거쳐 일제의 강점 아래 農工分業體制에 편제된 가운데 미곡 생산 지대를 배후지로 삼고 이에 기반하여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이 전입하거나 이주해 왔다. 이들 공히 출신지에서 경제적으로 압출된 나머지 사업투자형 이주 형태보다는 생계형 이주 형태를 보였다. 아울러 일본인 대다수는 人的·地域的 緣網에 근간하여 정착하였고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주·자본가 출신 일본인의 경우,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척식정책에 힘입어 농장을 설립하여 미곡 생산과 무역의 독점적 주체로 떠올랐다. 이어서 1920년대 産米增殖計劃의 실시에 따라 군산의 미곡 이출량이 급증하면서 일본인 지주는 물론 일본인 소상공인들도 경기의 호황과 이미 확보해 두었던 緣網을 활용하여 상류층으로 상승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전입 조선인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생계형 전입에서 나오는 취약성을 견디지 못해 부분적인 계층 상승에 머물거나 오히려 하락하였다. 아울러 일제하 고용구조 아래 민족별 임금 차별을 감수하는 현실에서 조선인들의 대다수는 일용직, 하급노동자, 부두하역 노동자 등 사회하류층으로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군산부 계층 구조의 이러한 민족별 양극화는 1930년대 미곡통제법의 시행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하 지주제의 모순과 연계되면서 극에 달했다. 즉 배후지 농촌에서 전입하는 조선인 소작농과 부랑 세대는 군산부 조선인 노동시장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失業率의 증가를 비롯한 각종 도시 문제를 야기하였다. 이 중 土幕民이 급속하게 증가함으로써 도시 총인구 대비 土幕民의 비율이 전국에서 최고일 정도였다. 이에 군산부와 일본인 유력자들은 군산 지역의 불황에서 그 이유를 구한 가운데 군산의 공업화 전략이라든가 미곡통제법의 완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제하 지주제와 농공분업체제가 조정되지 않는 한 이러한 방책들은 임시고육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군산부의 조선인 노동력을 여타 공업 지대로 송출시킴으로써 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兵站基地化에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하고자 하였다. 군산부 조선인들의 또 다른 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는 강요된 이동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일제의 침략 전쟁에 동원되는 형태로 이어졌다. 결국 일제하 지주제와 농공분업체제의 모순은 이들 양 제도가 상호 결합되어 있었던 군산 지역의 조선인 주민들에게 전가된 셈이다. 반면에 군산부에서 경제적?사회적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한 일본인들은 일본자본주의 체제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반을 상실하지 않았다. ; N ; 2
    • ISSN:
      1226-7562
    • Relation:
      한국민족문화 No.35, pp.3-56; https://hdl.handle.net/10371/208209; 186682; ART001392244
    • الرقم المعرف:
      edsbas.70F1BE7E